에디터_최진주|사진_I ZOO (ecoleLUXE) 반동거는 OK, 동거는 Never ever no? 수많은 뮤직비디오 속 주인공들은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며 방구석에 처박혀 운다. 행복하게 연애하던 당시를 회상하는 장면은 뮤직비디오계의 클리셰다. 여행가방을 들고 떠나는 장면을 보니, 두 사람은 같이 살았던 모양이다. ‘잠이 든 너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눈을 뜨면 네가 사라질까봐 사라질까봐 잠 못 들다가’, ‘내일을 생각하며 서로 꼭 껴안고 잠이 드는’ 생활은 이제껏 언급해온 바로 그 동거가 아닌가? 그렇다고 이것이 TV 속 사람들만 하는 비현실적인 주거 형태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지역을 옮겨 학교를 다녀본 사람이나 고향을 떠나 다른 곳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동거는 일상이다. 자신이 경험했거나, 자신은 아니더라도 주위에서 동거 커플을 쉽게 접할 수 있기에 매우 친숙하다. 우리는 ‘동거’라는 단어에서 뭔가 불법적이고도 은밀하며 야하기까지 한 냄새를 느낀다. 그러나 그 느낌은 철저한 사회화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이들은 스스로 혹은 주위 친구들이 당시 했던 라이프스타일이 바로 그 ‘동거’였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에디터의 질문에 순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것이다. 부모님의 품을 떠나 혼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연애를 하게 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살림을 합치고 싶은 욕망에 한 번쯤 시달리게 마련이다. 그것은 ‘사랑’과 ‘성’과 ‘경제’적 필요성에서 비롯된 욕구다. 정말 많이 사랑하니 헤어져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쉽다. 최소 5만원 이상의 모텔비와 각종 데이트에 필요한 비용은 참으로 부담스럽다. 모텔에 네 번만 가도 최소 20만원이다. 연애를 하게 되면 갑자기 급증하는 지출에 허덕이게 되고, 연애기간이 길면 ‘차라리 이 돈을 모아서 집 사자, 결혼비용 만들자’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다. 주인집 아주머니와 경비실 아저씨부터 우리 앞에서는 “예쁘게 잘 살아~ 축하해!”라고 말하지만 화장실에서 소곤대는 그녀들까지, 동거 커플은 주위의 시선이 두렵다. 그들 자신이 당당하다고 주장할지라도 계속되는 시선의 시달림은 그들을 지치게 한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반동거를 해왔다. 즉 하루 종일 한 집에서 지내다가 잠만 자기 집에 돌아가서 자는 것이다. 반동거는 그저 외부 시선을 의식한 가림막일 뿐, 결국 동거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동거는 아무리 해도 ‘올바르지 않은 무언가’로 취급되지만 반동거는 진한 연애와 동일시되고 기성세대에게도 용인된다. 부모님 앞에선 아무도 당당하지 않다 남자의 집에 들어가거나 내 집에 남자의 짐이 들어오게 되는 모습이 ‘현상’이라고 표현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당연한 외국의 경우를 우리나라에 대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들의 인식 자체가 바뀐 것은 분명하다. 동거에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은 외국에 나가 살게 된다면 동거하기가 쉬울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다시 말해 동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하지 않겠다, 남이 하는 건 상관없지만 나는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이들은 결국 ‘내가 한국 땅에 발 붙이고 사는 한’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이다. 어째서 생각은 이국적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을까? 그것은 우리가 기성세대와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과 단절된 채 살아갈 수 없으므로 동거보다 기성세대에게 용인되는 반동거의 비율이 높은 것이다. 시대가 달라졌지만 우리는 여전히 다른 사람 앞에서 애정 표현을 당당하게 하지 못한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이 사회에서는 신혼부부가 임신을 하면 살짝 부끄러워해야 했다. 적어도 지금 이 시점에서는 내 자신이 아무리 당당하더라도 부모님 앞에서 떳떳할 수 없다. 그렇다면 5년 후, 10년 후에는? ‘남자친구 집에서 머리채 잡혀 끌려나온’ 엄마의 에피소드를 들려준다면 우리의 아들딸은 믿지 못할 것이다. 남자들이여, 왜 동거를 원하는가? 동거가 여자들만 손해보는 장사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저 동거 이력을 혼전순결 따위의 확인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동거남보다 동거녀가 더 많은 죄의식을 느낀다. 실제로 그것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나이 서른에 연애 한번 안 해봤다는 거짓말을 100% 믿으며 헤벌쭉 좋아하는(대체 왜 좋아하는 걸까?) 종족이다. 솔직히 말해서 그들이 우리에게 과거 남자에 대해 캐물을 때와 똑같이 반응하면 된다. 동거의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남자의 아이러니한 이기심, 그리고 여자의 연약함에서 비롯되는 문제를 조심해야 한다. 다음의 두 가지 현상 중 하나라도 일어난다면 아무리 사랑했더라도 그를 쫓아내든 그 집을 나오든 그 관계를 끊어야 한다. 첫째, 폭력이다. 같이 있는 시간이 길수록 다툼이 일어날 확률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집은 사생활을 보호받을 수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 가정범죄가 은폐되는 것이다. 길거리에서 싸우는 연인들은 정말 큰일이 아닌 이상 소리 지르며 싸우다가 말지 폭력이 개입되는 일은 흔치 않다. 보는 눈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에서 싸우면 불상사는 쉽게 일어난다. 지하철역에서 당신이 따귀를 맞으면 모든 사람들이 두 사람을 바라보고, 어른이든 젊은 남자든 말려준다. 그러나 집 안에서 맞으면 속수무책이다. 그가 당신에게 폭력을 가하는 순간, 동거든 연애든 그와 결별하는 것이 순리다. 동거가 ‘결혼 전 예행연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래야 할 것이다. 한 번 때릴 수 있는 남자는 두 번 때릴 수 있고, 여자 따귀를 때릴 수 있는 남자는 여자를 발로 찰 수 있다. 둘째, ‘식모화’다. 그는 왜 당신과 같이 살고 싶어하는 걸까? 아침에 따뜻한 밥을 먹고 싶어서? 깔끔하게 정리정돈된 방에서 깨끗하게 다려진 옷을 입고 집을 나서고 싶어서? 당신은 그의 파출부가 아니다. 이 글을 남자들이 본다면 분명 입이 튀어나올 것이다. 왜냐하면 ‘어쨌든 혼자는 못 살겠다. 남자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많은 여자들이 알게 모르게 굉장히 의존적이기 때문이다. ‘무거운 물건은 남자가 들 테고, 전구 갈기 같은 귀찮은 것도 해주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당신은 당신을 ‘섹스 서비스까지 가능한 파출부’라고 생각하는 남자와 동급이다. 그는 무거운 짐 옮기기, 전구 갈기를 제외한 모든 가사노동을 당신에게 맡길 것이다. 당신이 원할 때 같이 살아라 왜 그 사람과 같이 사는가? 왜 그와 같이 살고 싶은가? 이유는 반드시 ‘그가 날 사랑하고 내가 그를 사랑해서’여야 한다. 동거는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 그가 같이 살자고 조르고 매달려도 당신의 마음이 끌리지 않는다면, 탐탁지 않다면 결코 그의 말을 따를 필요가 없다. 반대로 그 남자를 잡기 위해 억지로 사는 행동 역시 파탄의 지름길로 걸어가는 짓이다. 같이 살지 않으면 그가 떠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이미 두 사람의 관계가 좋지 않다는 뜻이며, 그의 동거 제안은 떠나기 전 부려먹든 섹스를 하든 당신을 실컷 이용해먹고자 하는 흑심에 불과하다.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의문이 들었다. 동거는 언제나 남자가 여자에게 제안하는 것인가? ‘나는 그래도 개방적이야’라고 조금은 우쭐해하며 살아왔던 에디터 역시 은연중에 그렇게 생각해왔다는 사실을 이번 테마를 진행하며 깨달았다. 결혼이라는 제도는 남자에게만큼이나 여자에게도 두렵다. 결혼이든 동거든, 사랑에 있어서 여자는 늘 피해자인가? 결혼이란 제도에 대해 부담을 느끼는 것은 남자뿐만이 아니다. 동거를 싫어하는 이들은 ‘결혼을 인생의 종착점’이라고 생각한다. 결혼 이후의 책임감이 두렵기에 책임감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동거가 더 두려운 것이다. 결혼 후 우리는 상대가 바람을 피워도, 때려도, 부당한 대우를 해도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야”보다 “네가 참아봐. 결혼은 인내야” 따위의 조언을 더 많이, 그것도 같은 여자에게서 들어야 한다. 그런 책임감 내지는 인내심이 동거 커플에게는 없는 걸까? 같이 살 때 서로에게 맞춰가며 책임감을 느끼는 것은 동거도 마찬가지다(아니, 그 책임감은 꼭 있어야 하는 건가?). 결혼이 아름답다고 동거가 추한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같이 산다는 건 상대방의 현실도 보듬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에디터는 살면서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한 남자를 딱 두 명 만났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과 결혼하고 싶은 걸까? 살아보고 싶은 걸까? 그와 결혼하고 싶다면 결혼해라. 그러나 ‘결혼’이 아니라 같이 살고 싶은 거라면 같이 살아라. -동거가 여자만 손해보는 장사이든 아니든,
부모님 앞에서 떳떳하든 죄스럽든 당신의 마음에만 당당하면 된다.
같이 살고 싶을 정도로 사랑하는가? 같이 살아라.
같이 살면 행복할 것 같은가? 행복해져라.
당신 자신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
- 2009/09/17 00:45
- mariapearl.egloos.com/2428063
- 덧글수 : 2
덧글
확실히 동거 하다가 서로 정말 잘 맞으면 결혼 이라면 나쁘지는 않아 보이는군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순결을 지키면서 상대의 순결을 바라는
일종의 로맨틱시즘을 너무 비하하는건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는 막 나가면서 순결한 배우자를 바란다면 그건 별볼일 없는 인간이고,
그런 인간을 분별 못한다면 결국 자기 자신 역시 별볼일 없는 인간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