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테스트


소녀, 숲속을 거닐다(학원 땡땡이 치고 숲속 요정을 찾아가다) <SSUPY>9월호 단편 스토리 BY editor 최진주 최작가의비주얼노블




소녀, 숲속을 거닐다

사랑스러운 샤스커트를 입고 똘망똘망 안경을 쓰고 숲속 요정을 찾아가다.

 

editor·CHOE JINJOO photographer·CHO WUJIN stylist·LEE YUNJUNG
Makeup·KANG HYUN(Kei) Model·YU MINHA


어느 날, 소녀는 어른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학원 빠지고 친구들과 놀러나간 걸 엄마한테 들켜서 혼난 게 짜증나서 그런 건 결코 아니다. 학원 선생님의 고자질에 분노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절대 아니다. 그냥 자신을 가만 두지 않는 세상이 미웠다. 어른이 되면 세상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거야! 어른들처럼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살아야지! 그러나 소녀는 열다섯. 어른이 되려면 아직 멀었고, 시간은 달팽이처럼 느리게 흘렀고, 소녀의 성격은 급했다. 어떻게 하면 더 일찍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하는 사이 기말고사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되었다.
방학 첫날, 소녀는 꿈을 꾸었다. 산과 바다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두말할 것도 없이 바다를 고른다던 소녀가 웬일인지 숲 한가운데 있었다. 온통 초록빛 숲. 햇살이 낮게 드리운 걸 보니 해가 저물려는 걸까?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 집에 가야겠다! 순간, 귓전에서 누군가가 속삭였다. “나를 찾아와요.” 후다닥 깨버린 소녀. 눈을 번쩍 뜬 소녀의 귓가에 그 속삭임이 계속 울리고 있었다. 나를 찾아와요, 어른이 되고 싶다면.


소녀는 계획을 세웠다. 뻥이다. 소녀는 무계획적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부류로서, ‘오늘의 할 일’ 리스트 따위는 죽어도 쓰지 않는, 즉 자신의 뇌를 신뢰하는 인간 중의 하나다. 며칠 TV도 안 보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엄마의 경계가 느슨해졌고, 베프는 가족끼리 바캉스에 갔다. (소녀의 아버지는 휴가도 반납하는 워커홀릭이고, 어머니는 현모양처를 위장한 워커홀릭이다. 다시 말해 짠물에 엄지발가락 한 번 못 담가보고 이 여름이 지나갈 예정이다.)
소녀는 자전거에 올랐다. 어릴 적 딱 한 번 갔다가 길을 잃었던 좋지 않은 기억 때문에 열다섯 평생 다시 가지 않았던 숲으로. 왠지 감이 왔다. 꿈속의 숲은 분명 그곳일 거야. 그리고 또 하나의 확신. 귓가에 속삭였던 존재가 귀신도, 사람도 아닌 요정이라는 확신. 시크한 베프가 알면 완전 오그라든다며 구박하겠지만.

노랑 자전거를 타고 씽씽 달렸다. 숲 입구. 거대한 입을 벌리고 먹이를 기다리는 것 같은. 앨리스가 그 이상한 나라에 갈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보다 먼저, 어릴 적 기억이 떠올라 심장이 팔딱팔딱 뛰었다. 아니, 난 어른이 될 거야. 냉방병에 걸린 것 같다며 엄마한테 문자를 보내놓고서, 한 걸음. 소녀는 눈을 꼭 감고 숲으로 들어섰다.
가끔 식은땀을 흘리며 깼을 정도로 소녀에게 트라우마를 남긴 기억 속의 숲은 생각보다 좋았다. 자동차 매연 풀풀 날리는 학원 앞이나 높은 건물만 가득한 아파트촌과는 달랐다. 그 괴로웠던 밤 시간이 민망하고 억울하다고 생각하며 소녀는 걸었다. 흰 운동화 끝이 더러워지고 있다.

숲은 미로 같았다. 앞으로 한발씩 걸음을 옮길 때마다 등뒤의 나뭇잎들이 샤샤샥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숨겨버리는 느낌. 기분상 아까 입구도 이미 닫혀버린 게 아닐까 하는 비현실적인 걱정도 들었다. 아, 지금 하고 있는 모든 행동 자체가 비현실적 모티브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지.
소녀는 서서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대체 어딜 가야 요정을 만날 수 있는 거지? 요정님인지 요정년인지 빨랑 좀 나와 보라고!! 허공을 향해 신경질을 부리고 나니 지친다. 꿈만 믿고 온 내가 동네 바보지 뭐. 휴우....아무데나 철퍼덕 주저앉고 싶지만 이 몸은 나름 요조숙녀다. 아무데나 앉을 수는 없는 몸이다. 게다가 나풀나풀거리는 흰 스커트를 입고 앉았다가는 집에 돌아가서 엄마한테 먼지 날리게 맞을 확률이 높다. 일단 서자. 서서 쉬자.


가만히 서 있으려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뭔가가 있다.
내가 아닌 누군가의 움직임이 살갗을 통해 느껴진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화이트 하이탑의 절벽을 넘어 종아리까지 기어오르고 있는 개미.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고 느낀 순간, 개미가 고개를 옆으로 까딱 했다.


안녕?
엄마야!!!!!!!

기겁한 소녀는 존재를 까먹고 있던 엄마를 불러대며 팔짝팔짝 뛰었다. 그러다 돌부리에 걸려버렸다. 으악. 털썩. 눈앞이 노래진다. 이런 젠장.

눈을 떴다.

뾰족뾰족 하늘을 향해 솟아 있는 나무의 끝이 세로로 보이고, 그 끝에 하늘이 매달려 있다. 깜빡깜빡. 나 아까 개미 보고 놀란 거지? 근처에 개미집이 있었나? 설마 나 산채로 여왕개미의 제물이 된 건가? 손가락을 움직여보니 잘 움직인다. 끙... 상체를 일으켰다. 끙... 집에는 다 갔다. 진짜 맞을 일만 남았구나.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터는데 눈앞에 흰색 벤치가 보인다. 벤치 끝에 점이 있다. 안경알을 소매로 박박 닦았다. 동공을 확장시키자, 그 점이 움직인다. 고개를 까딱.

안녕?

뭐니 이거. 이 숲엔 오지 말아야했어. 난 선견지명이 있었던 거야. 말하는 개미 따위 어디다가 얘깃거리로도 쓸 수 없는, 얘기했다가는 전교에서 따돌림 당해도 시원찮을 아이템이라고. 소녀는 평소의 시크한 애티튜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복날 삼계탕을 안 챙겨 먹어서 그런가. 그런가보다. 소녀는 요즘 기가 허한 게 분명하다고 중얼거렸다.

그러나 소녀의 복잡한 머릿속과는 상관없이 개미는 그 가느다란 더듬이를 구부리며 고개로 먼 방향을 가리키더니, 벤치에서 얍! 하고 뛰어내리...지는 못하고 차근차근 졸졸졸 벤치의 다리를 따라 기어 내려왔다. 잔디에 가려 잠시 몸이 보이지 않았던 개미는 열심히 풀밭을 통과해 흙길을 따라 어디론가 기어갔다.
그 어이없는 광경을 지켜보던 소녀는 일단 개미를 따라가기로 했다. 벤치에서 점프도 못하는 개미를 따라가봤자 인간보다 더 큰 개미를 만날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혹은 이놈의 개미가 미성년자 유괴범의 하수인일 확률도 없다. 따라가다가 아차 싶으면 찍 눌러 죽이고 튀는 거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한 가지 문제. 개미의 백 걸음이 소녀의 한 걸음이라는 것. 개미를 쫓아가기엔 앞에서 언급했듯이 소녀의 성격은 무지무지 급했다. 개미의 스피드를 따르다가는 목적지까지 최소 한 달은 걸릴 것 같다. 흙길은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이 아니었지만, 양쪽 가장자리의 풀잎들이 마치 길을 향해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가로등처럼 줄지어 서 있었다. 소녀는 급한 마음에 마구 뛰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자 달리기를 멈췄다. 후후 하하 후후 하하. 햇살이 나무 사이로 스며든다. 소녀는 눈을 찡그렸다. 햇빛을 손바닥으로 가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나무 다섯 그루와 꽃이 달린 가지를 지나쳤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나 목적지에 도착했구나.

나뭇잎을 통과한 햇볕은 뜨겁지 않다. 부드럽고 신비롭다. 어린 시절에는 절대로 생각지 못했던 공간. 그곳에 누군가가 있었다. 소녀가 오기를 기다렸던 걸까. 생긋 웃는다. 소녀도 같이 웃어줬다. 뿔테 안경을 치켜 올리며 초점을 맞췄다. 요정이다. 엄마 나 요정 찾아냈어!!!!
소녀는 돌 위에 앉아있는 존재를 향해 느릿느릿 다가갔다. 어서 오라는 표정. 그런데 나 저 사람 어디서 많이 봤는데? 누구더라? 그녀의 일생을 통틀어 매우 익숙한 얼굴, 그러나 낯선 얼굴. 그 사람 아니 그 요정이 천천히 일어서서 소녀와 눈을 맞춘다. 소녀의 눈높이와 꼭 맞다. 아주 꼭 맞다. 소녀가 고개를 왼쪽으로 갸웃거리자, 상대방도 똑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마치 거울처럼 갸우뚱.

이거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장면인데? ‘데자부’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소녀는 꿈의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나 꿈의 편린에서는 얼굴이 나오지 않았었다. 더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 내려간 말초신경 끝. 소녀는 잃어버렸던 퍼즐의 조각을 찾아냈다. 그 때 소녀는 이 숲에서 길을 잃기만 했던 건 아니었다. 그 때도 누군가를 만났다. 아주 어린 아이를. 아주 깜찍하고 예쁘장하지만 그래서 왠지 무서웠던. 아주 똑같았던.

소녀는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말하는 개미도, 요정도 집어치우고 냅다 뛰었다. 에잇, 이렇게 체력 쓸 줄 알았으면 차라리 오빠들 팬싸나 갔다 올 걸. 뭐하는 짓이니 이게. 나뭇잎이 입구를 가리켜주고, 숲의 공기가 소녀의 등을 밀어 입구 쪽으로 데려다주는 것 같았다. 눈 깜짝할 새 소녀는 입구 앞에 나와 있었다. 아까 꺼두었던 핸드폰 전원을 켰다. 고작 10분이 지났을 뿐이다. 숲속의 시간은 아주 느리게 흘러갔나 보다.

그녀는 책장을 덮었다. 요정을 만나 팔짝팔짝 뛰는 소녀는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다. 소녀는 그녀의 기억일까. 그녀의 상상일까. 어른이 된 소녀가 추억하는 어린 시절인가. 아니면 그녀가 결국 경험하지 못한 판타지 월드를 향한 환상이 빚어낸 아바타인가. 어느 것도 확실치는 않지만 분명한 건 그녀가 소녀를 부러워하고 있다는 사실. 우리가 당신을 부러워하는 것처럼. 그리고 지금 그녀는 그 숲에서 요정을 기다린다는 것. 그녀와 똑같은 얼굴의 요정을.

story by choe jinjoo


*이 포스팅은 SSUPY(써피) 9월호에 실린 패셔니스토리(fashionistory) 기사로서,

글의 저작권은 최진주(바람의 머리카락)에게 있습니다.

상업적 사용을 금지하며, 비상업적이라도 저작권법에 저촉되는 행위라면 지구 끝까지 쫓아갑니다.*

 

덧붙임-일반적인 '비주얼 노블'의 정의와 이 게시판의 용도는 다르다. 말하자면 포토 노블의 개념으로, 사진과 짧은 소설의 결합으로 이 게시판을 활용할 생각. 


 

scene #1 요정의 속삭임, 나를 찾아오세요.
핑크스트라이프티셔츠 바닐라비 9만9천원, 핑크스트라이프가디건 올리브데올리브 5만9천원,
화이트샤스커트 벨앤누보 가격미정, 하트큐빅귀걸이 러브캣 18만9천원,
핑크사각프레임밴드 시계 baby-G 12만원.

scene #2 사진은 안 올렸으니 설명 제외.

 

scene #3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사각프레임나무테 안경 39만6천원,
화이트셔츠 꼼빠니아 가격미정,
화이트 샤원피스 가격미정, 노란색 체크 보타이 벨앤누보 가격미정, 베이지톤 가디건 앤클라인 21만9천원.

 

scene #4 돌 위에 살포시 앉아있는 그녀는 누구?
화이트 재킷 바닐라비 19만9천원, 베이지색 샤원피스 skgirl.com 2만5천원,
핑크부츠 EXR 6만4천원, 하트모양귀걸이 러브캣 7만9천8백원,
핑크색 와이드 벨트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scene #5 소녀, 어른이 된 걸까?
화이트베일모자 루이엘 48만원, 브라운벨트원피스 모조 39만8천원, 나비 모양 반지 뱅글 가격미정 벨앤누보.


 


덧글

댓글 입력 영역


구글 테스트

타로마스터가 추천하는 월간 행운의아이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