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빼빼로 데이에
J군에게 고백하다
-pepero day’s special styling-
길쭉한 과자 하나 때문에 불안과 설렘이 가득한 날 11월 11일. 그 날은 옷도
예쁘고 피부도 윤기 나고 직접 만든 빼빼로도 맛날 거다. 아니, 반질반질한 교복
차림이라도 퉁퉁 부은 얼굴이라도 삐뚤빼뚤한 빼빼로라도 사랑해주는 J군을 찾아갈
테다.
editor·CHOE JINJOO | photographer·LEE WANK | stylist·LEE YUNJEONG
| hair & make up·PARK MIKYUNG, HWANG MINJI(HAIR NEWS) | model·KIM
SEYEON | cooperation·DREAM TOY, DESIGN TOCTOC, KIM HEEJIN'S FELTHOUSE
WHO DO YOU LOVE?
지이익 달력 한 장을 뜯어내고 11이란 숫자를 발견하는 순간, 눈이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한다. 아주 자연스럽게 또 다른 11을 찾아간다. 끙. 피곤한 열흘을 보내게 되
겠군. 교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서니 짝꿍이 쪼르르 달려오더니 어깨동무를 한다.
배시시 웃는 폼을 보니 왠지 감이 온다.
“우리 빼빼로 만들어서 J군한테 보내자!”
어째서 불길한 감은 언제나 딱 맞는 걸까? 내 짝꿍으로 말할 것 같으면 자칭 J군
의 대국민 홍보위원으로서, 아이돌 J군이 남녀노소 모든 세대에서 인기를 얻도록
하기 위해 온갖 홍보 전략을 짜는 인간이다.(물론 J군과 소속사는 전혀 모른다.)
이 인간이 우리 4인방의 ‘브레인’(brain)을 담당하고 있다면 쪼르르 달려와 내 양
옆에 달라붙어 “4인방 합체! 빼빼로 대작전!” 유치찬란 작전명을 외치고 있는 두
명은 ‘실행위원’을 맡고 있다. 브레인이 ‘사서 개고생’하는 기획을 내놓으면 실행
위원 1이 부추기고 실행위원 2가 설치는 시스템이랄까?
4인방인데 나는 뭐냐고? 당신이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시피 난 ‘반항아’ 담당이
다. 좋게 말하면 시크하고 나쁘게 말하면 비관적인 나는 반항아답게 이렇게 대답
한다.
“놀구 있네. J군 빼빼로 싫어하거든?”
더헙!!!! 말을 내뱉은 순간 내 입을 꿰매버리고 싶었다.
아...나의 도도한 이미지는 한 번의 입방정으로 끝장나는구나. 그렇다. 평소에는
일코 중이지만 나도 J군을 좋...좋...은 건진 잘 모르겠고, 어쨌든 호감은 있다. 하
지만 뭐 팬질을 하고 그러는 건 아니다.
역시나 브레인, 내 말실수를 안 놓치고 잔소리를 해댄다. 허구헌날 시크한 척은
혼자 다 하면서, 어차피 J군은 대세인데 나도 J군 좋다고 하면 누가 뭐라고 할
까 봐 그러는 건가, 안 좋아하는 척 하면서 왜 신상명세는 다 꿰고 있는 건데, 그
리고 빼빼로 싫어한다는 정보는 또 어디서 들은 거지, 우리 앞에서는 ‘연예인 따
위...’ 이러면서 집에서는 팬픽 읽고 있는 게 분명해, 우리한테 얼굴도 안 보여주
는 옆집 녀석한테 줄 빼빼로 만들 바에야 우리 J군한테나 만들어주지... 어쩌구 저
쩌구 블라블라.
라따 라따 아라따. 귀가 따가워서 일단 알았다고 대답하니 브레인과 실행위원들이
‘올레’를 외친다.
이들의 계획은 다음과 같다.
1. 사랑과 정성이 가득 담긴 빼빼로를 만든다.
2. J군의 숙소에 쳐들어가 11월 11일에 가장 먼저 이 빼빼로를 받을 수
있게 하자.
3. 하지만 손재주가 없다.
4. 손재주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는다. 아주 많이.
그렇다. 이 아이들은 내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거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D.I.Y의 여신! 초등학교 때부터 푸닥거리며 지냈던 옆집 녀석도 내가 만들어준 우
정초콜릿에 정신이 혼미해져 한동안 나 대신 쓰레기 봉지를 버려주기도 했다. 아
침에 뻗친 뒷머리 말아주기부터 핸드폰 액정 필름 조공까지 삼고초려가 이어지
자, 심드렁했던 나는 항복했다. 제대로 실력 발휘 좀 해볼까.
길고 긴 학원 수업이 끝나고 집에 터덜터덜 들어오니 엄마는 TV 삼매경. 밥 달라
고 외치는 딸년의 뱃속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이다. 우유 한 잔을 들이키며
엄마 옆에 앉았다. 화면 가득 J군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어있다. J군이 자신을 뚫
어져라 바라보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한다.
“책임져. 세상에 너밖에 안 보이더라.”
화면 밖의 엄마가 헤벌쭉 웃으며 호들갑을 떤다.
“어머머~~너무 멋있다~~~”
진짜 오그라들다 못해 주먹이 펴지지 않는다.
“엄마, 나이를 좀 생각해!! J군은 나랑 동갑이야 엄마 아들
뻘이거든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비꼬듯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저게 멋있어?”
J군을 향해 그리도 해맑게 웃던 엄마가 돌아보더니 정색한다.
“그러엄~ 너는 딱, J군 같은 남자만 데리고 와봐! 바로 결혼 콜이다!
음... J군이 많이 아깝긴 하지만. J군네 엄마가 허락 안 해주려나? 호호,
암튼 엄만 대찬성일세!!!”
냉정하게 진실만을 얘기하며 딸의 가슴에 대못 박는 엄마. J군은 요즘 엄마들의
귀요미다. 왠지 자꾸 짜증이 난다. 잠이나 자자.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열고 옆집
녀석에게 문자를 보냈다.
-바빠? 애들이 빼빼로 선물한다고 난리야@-@
-나 바쁜 거 말로 해야 아냐
이 자식.... 너무 까칠하다. 간만에 문자 보낸 건데 돌아오는 답문 꼴하고는.
-엄마가 드라마 보더니 나보고 J군 같은 남자 만나래-_-a
헐... 대답이 없다. 어둠 속에서 몇 분을 기다렸다. 괜히 보냈나? 자존심도 약간
상하고 신경질이 났지만 그보다 더한 졸음이 밀려왔다. 눈을 아주 천천히 감았다
뜨기를 반복하고 있는데 띠링~ 문자가 왔다. 감기는 눈을 억지로 뜨고 문자를
확인했다.
-헛소리 말고 얼른 자. 키 안 큰다 꼬맹아.
그저 다른 팬들이 만든 것보다 좀 더 눈에 띄는 빼빼로를 만들자던 계획은
브레인의 설레발 탓에 뭔가 거대한 프로젝트로 변신하기에 이르렀다. 남들은
다 빼빼로를 줄 테니 우린 완전 특이한 걸 만들어야겠어, 그리고 11월 10일
J군의 밤샘 촬영이 예정되어있지. 그게 끝나면 11일 아침에 돌아올 테니 새벽녘
길가에서 숙소까지 가는 길에 파티 플래그를 주루룩 달아놓는 거야. 우린 숙소
앞에서 잠복했다가 J군이 도착하면 현관 앞에서 그를 맞이하는 거지.
자기들이 말해놓고 퍼펙트 플랜이라느니 완전 기억에 남을 거라느니
자화자찬하느라 신난 이들 앞에서 나는 선언했다. 새벽? 난 못 일어난다. 학교?
난 지각하기 싫다. J군? 난 그 정도로 좋아하지 않는다. 결국 새벽 잠복근무는
셋이서만 하기로 결정. 난 소중하니까!!!
사실 그들로서는 내가 전날 저녁에 D.I.Y를 완성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다.
심지어 파티 플래그도 내가 만들어주는 것 아닌가!(내 도움만 바라지 말고
스스로 해보라고 이것들아! 해봐야 실력이 늘지.) 파티 플래그 만드는 건 어렵지
않다. 다양한 무늬의 천을 세모나 네모로 잘라서 긴 리본에 붙여주면 끝이다.
서로 다른 패턴의 천들을 한 줄로 이어놓으면 신기하게 잘 어울린다. 실은
옆집 아줌마의 한때 취미 생활이 ‘아들내미 공주처럼 키우기’였다. 생각해보니
아줌마가 나의 D.I.Y 스승이로군.
10일 저녁, 하늘이 4인방(정확하게는 나 빼고 3인방)을 도왔는지 학원 수업도
일찍 끝났다. 열흘 동안 사방팔방에서 얻어온 옷감과 빼빼로 재료를 들고 나타난
웬수들 그리고 오늘의 아티스트 겸 파티셰 겸 무보수 착취에 고통받는 노동자.
-나 애들이랑 파티 플래그 만들고 있당~
-그게 뭔데
-기억 안 나? 옛날에 아줌마랑 나랑 만들어서 걸어준 적 있잖아-_-
-아 그거
악악. 옆집 녀석의 무심한 단답형 문자는 예나 지금이나 정말 견딜 수 없다.
하지만 참자.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옛날부터 이 녀석 어르고 달래는 데는
도가 텄다.
-빼빼로도 만들고 있지롱^0^
-누구 주게
-안 가르쳐주지 힛힛
녀석에게 낚시용 문자를 보내며 낄낄대고 있는데, 브레인이 그동안 각종
인터뷰들로부터 모은 정보를 읊기 시작한다. J군이 빼빼로를 잘 먹지 않는 이유?
알고 보니 J군은 빼빼로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단다. 어릴 적 생일 때 엄마가
빼빼로로 과자 집을 만들어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빼빼로 킬러였던 친구가 그
집을 탐냈던 것이다. 서로 밀고 당기다가 빼빼로 집은 산산조각 나고, 친구가
울고불고 해서 자기만 된통 혼났다나. 그 이후로는 빼빼로를 다신 안 먹는다는
거다. (인터뷰 당시 어쨌든 과자집의 주인은 자신이었다고 강력하게 어필했다며
실행위원 1이 덧붙임.)
진짜 소심한 놈이로군.
어릴 때야 먹을 것 갖고 싸울 수도 있지 뭘.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거야?
“참 나, 그래서 빼빼로라면 질색하는 거래?”
“엄마야, 너 몰랐어? 으헤헤 드디어 얘가 모르는 정보를 내가 먼저 알아냈다!!!”
쓸데없는 승리감에 도취된 브레인 옆에서 실행위원 2가 나머지 정보를
읊는다. 그렇다고 J군이 초콜릿이나 과자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속에 초코가
들어있는 과자는 중간중간 입이 심심할 때 하나씩 먹곤 한다. 특히 굵은 롤
타입의 초코과자는 없어서 못 먹는다. 언젠가 롤 과자로 집 선물을 받으면
좋을 것 같다. (어쩌면 어릴 적 안 좋은 추억이 사라질지도 모르겠다나?
헐-_-)
옳거니!!! 브레인이 무릎을 탁 친다. 왠지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J군의 트라우마를 우리가 없애주는 거야!! 롤 과자집 고고씽!!!
기합이 잔뜩 들어간 표정으로 고고씽을 외친 웬수들.
그리고 이쪽을 돌아본다. 오늘의 파티셰를 향해. 바로 나를 향해.
(저기요... 그거 결국 내가 만들어야 하는 거니?)
저 발언 때문에 전국 방방곡곡에서 최소 100개의 롤 과자집이 제작되어 J군네
소속사로 배달될 것이다. 만들어봤자 전혀 차별화되지 않을 거라고 설득했지만
웬수들은 굴하지 않았다. 이들이 믿고 있는 것은 파티 플래그 이벤트와
새벽이라는 타이밍. 이것들아 파티 플래그도 내가 만들었거든요?
젠장. 손가락이 부러질 것 같은 기분.
이 ‘사생팬’ 스멜 풍기는 인간들의 손에 기어이 그들이 원하는 롤 과자집과
알록달록한 파티 플래그를 들려 보냈다. 웬수들은 작전 실행 후 1교시 수업
시작하기 직전 학교에 도착할 계획이지만 새벽잠 많은 이 몸은 코 자고 제시간에
등교할 거다. 하지만 그래도 우정이 한 100g 정도는 남아 있었나보다. 걱정이
됐는지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떴다. 다이어트 삼아 동네 한 바퀴 돌고 학교 갈까?
눈을 비비며 교복을 챙겨 입었다.
아파트 현관에서 계단을 타박타박 내려가는데
멀리 서 있는 차에서 누가 내리더니 휘적휘적 걸어온다.
헐. 옆집 녀석이다. 이러면 안 되는데. 쟤를 여기서 마주치면 안 되는데.
“야, 너 지금 이 시간에 왜 여기 있어! 어디서 오는 길이야!”
“몰라서 묻는 거냐?”
퉁명스러운 반응에 버럭 하고 싶었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캔을 해보니
상태가 말이 아니다. 다크 서클이 턱까지 내려오다 못해 가슴으로 흘러내릴
것만 같다. 이러니 까칠해질 수밖에. 그렇게 하고 싶어 하더니 피곤해 죽겠지?
쌤통이다. 이렇게 놀리면 볼에 멍이 들도록 꼬집힐 것 같아 관뒀다.
맞받아치지 않는 내가 이상해 보이는 걸까? 녀석이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그러다가 한다는 소리가 “너 안 본 사이 얼굴이 팅팅 부었다?” 이러고 앉았다.
창피하다. 짧게 자른 앞머리를 손바닥으로 슥슥 내렸다.
내 이마를 툭 치더니 나를 지나쳐 아파트로 들어가는 녀석. 피곤한 남자 냄새가
뒤섞인 향이 사라진다. 이 기분은 뭘까? 왠지 모를 서운함.
“아 맞다.”
녀석이 우뚝 멈추더니 돌아본다.
주머니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더니 휙 던진다.
나이스 캐치. 쪼글쪼글해진 편의점 봉지. 열어보니 빼빼로다. 레알 빼빼로.
하다못해 아몬드도 안 붙어있는. 심지어 주머니에 넣어서 상자가 납작해져버린.
이런 비루한 빼빼로를 봤나. 고개를 드니 그 새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다.
그아이의 뒷통수에 대고 말했다.
“줄 거면 쫌 큰 걸로 주든가.”
돌아보지도 않는다. 기지개를 켠다. 그리고 들려오는 대답.
“빼빼로 킬러가 것도 모르냐. 큰 건 맛없대.”
쭈그러든 상자를 열고 하나를 입에 물었다.
빼빼로를 오독오독 씹어 먹으며 학교에 가는 11월 11일 아침.
이젠 집에 잘 오지 못하는 옆집 J군.
친구들에게 아직은 말할 수 없는 내 사랑.
그리고 이건 우정의 맛이 아니라 비밀의 맛. 오도독.
아차, 브레인에게 문자를 보내야지. 가끔은 선의의 거짓말도 필요한 법이다.
-작전 변경 요망. 촬영 아직 안 끝났다는 소문-_-”
굿나잇 인 더 모닝.
나의 J군.
story by choe jinjoo
기억 1. 나에게 심신의 개고생이 무엇인지 알게 해준 촬영이었다.
기억 2. 저놈의 사탕앤젤리 탓에 스튜디오 안이 온통 단내-_-
기억 3. 플래그 만들어주느라 세모와 동그라미 그리고 네모 사이에서 허우적대던 강하나 후배 기자의 노고에 새삼 감사.
*이 포스팅은 SSUPY(써피) 11월호에 실린 패셔니스토리(fashionistory)로서,
글의 저작권은 최진주(바람의 머리카락)에게 있습니다.
상업적 사용을 금지하며, 비상업적이라도 저작권법에 저촉되는 행위라면 지구 끝까지 쫓아갑니다.*
scene #1
빼빼로 데이 대작전에 낚이다
캐주얼한 야구점퍼 코로나이즈 9만8천원, 보라색 티셔츠 카파 3만9천원,
화이트 니트 스커트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화이트 니삭스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연핑크색 운동화 알콘 6만8천원
scene #2
J군은 빼빼로를 싫어한다
퍼플 계열 체크 무늬 블라우스 바닐라비 가격미정, 베이지 시폰
스커트 큐니걸스 1만3천원, 진회색 레깅스 8천원 동대문, 밤색
워커 소보제화 6만원대, 구슬 팔찌 큐니걸스 가격미정
scene #3
이 몸이 만든 작품 한번 걸어봐
스카프가 매치된 블라우스 올리브데올리브
가격미정, 그레이 멜빵 팬츠 큐니걸스 가격미정,
핫핑크 레깅스 8천원 동대문
scene #4 이 몸이 만든 작픔 한번 잡숴봐
그리고
scene #5 누가 빼빼로를 받았을까?
는... 포토샵 돌려깎기를 많이 하고도 해결이 안 되었던 사진들이라 포스팅 안 하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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