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음악은 폐허 속에서도 살아남는다
유태계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거장 로만 폴란스키가 만들어낸
<피아니스트>. 제목만큼이나 영화를 꽉 메우는 피아노 선율은 관객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언제 봐도 소
름끼치는 유태인 학살과 전율이 흐르는 음악을 한 자리에 담아내면서 영웅이 아니라 약하디 약한 인간
을 그려 더욱 감동을 자아냈다.
글_ 최진주 기자
그들을 누구를 죽이고 싶어했나
<쉰들러 리스트>와 <인생은 아름다워>에 이어 또다른 방식으로 유태인 대학살을 지켜보는 <피아니스
트>는 새삼 나치의 잔혹성을 인식하게 한다. 한 가족을 도망치게 한 후 뒤에서 기관총을 난사하고, 병
든 노인을 건물 위에서 집어던지는 행위를 즐기는 군인들은 방금 자신이 죽인 사람들, 어쩌면 약한 숨
이 남았을지도 모르는 육체를 차로 짓뭉개며 지나간다. 2차 세계대전이 역사 속에서 가장 무섭게 기억
되는 이유는 몇몇 민족에게 있어서 쌍방이 치열하게 싸움을 벌이는 '전쟁'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당해야
만 하는 '학살'이었기 때문이다. 괜히 질문을 해도 이마 한가운데 총구멍이 생기고-게다가 대답도 안 해
준다-살기 위해 동족을 배신하고 나치 앞잡이가 되었는데도 늙었다는 이유로 토사구팽당한다.
독일인 중에도 유태인 학대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이 많았지만, 이상하게도 군복을 입은 독일인은 죄다
살기로 번들거리는 눈빛을 가졌으며 광적으로 그것을 즐겼다. 대중을 한꺼번에 선동하는 집단의식은 개
인의 생각과 상관없이 개인을 지배했다. 당시 패전했던 독일의 열등의식과 유태인이 기업을 장악하여
미움받았던 경제적 상황 등 복합적인 요인들이 맞물려 '유태' 민족이 선택받고-그들의 선민사상 즉 선택
받은 민족이라는 사상은 얼마나 아이러니한가-정치적으로 고통을 당했던 것이다.

그러나 잊지 말자. 우리도 북한 사람들이 뿔 나고 빨간 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 독일 안에서 전쟁 상
황을 몸으로 느끼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 특히 교육을 받는 순진한 세대는 우리처럼 그렇게 배웠다. 그
리고 믿었다. 한 민족 전체를 학살하는 과정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사람들의 절망 어린 눈빛 속에서
그들은 우월감으로 가슴이 부풀어오르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들이 정말 죽이고 싶었던 것은 자기 마
음 속에 있는 패전국이라는 열등감이었다. 단지 유태인은 운이 심하게 나빴던 것 뿐이다.

예술가도 사람이다
우리는 예술가가 좀 더 다른 생각을 하고, 특별하게 행동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예술가라는 이유로 그를
가스실을 향한 기차에서 빼내고 은신처를 구해주는 등 특별대우를 해준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에서 슈
프만은 살아남기 위해 도망치고 숨는다. 카라멜 하나를 6등분해서 나누어 먹었던 가족과 함께 죽기 위
해 다시 열차에 몸을 싣지도 않고 가족을 수용소에서 빼내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 그는 분명
히 죽었을 가족을 완전히 잊고 오로지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느라 여념이 없다. 죽음의 위기 앞에서는
어떤 사람이나 같다.
전쟁 종결 후 만약 그가 자신을 구해준 독일군 장교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것으로 끝났다면 그것은 우
리가 바라는 이상에 불과했을 것이다. 슈필만은 그의 이름을 몰랐고, 장교는 수용소에서 죽었다. 감동적
인 보은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것이 현실이다.

음악이, 피아노가 그가 살기 위한 이유였다고 하자. 살아서 다시 피아노를 치는 것이 그의 소원이었고,
그것은 이루어졌다. 힘없는 음악가에게는 음악이 총인가, 칼인가. 그렇지 않다. 그에게 음악은 저항의 도
구가 아니라, 죽기 전에 미리 연주하는 장송곡이었다. 그래도 예술가는 뭔가 다른 게 있다. 행복한 미소
로 피아노 건반을 쓰다듬는 슈필만. 벽 너머로 들리는 피아노곡을 따라 허밍으로 흥얼거리며 건반 위
허공에서 뛰노는 아름다운 슈필만. 그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가족도 아니고 사랑도 아니고, 자기 자신이
다. 그리고 그가 살려면 음악이 필요하다. 만약 독일 장교가 연주를 다 듣고 그의 손가락을 부러뜨렸다
면 그의 자아는 죽어버렸을까?
한가지만 생각하자.
슈필만의 인간적인 단점때문에 그의 음악이 퇴색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가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으
로 우리는 행복하다. 차별대우라고는 하지만, 슬프도록 아름다운 현실이다.
2002 <피아니스트> 감독 로만 폴란스키, 주연 애드리안 브로디


2013년의 사족-----------------------------------------
많은 관객들이 이 장면에서 엉엉 한마음으로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마지막 사진)
롱테이크로 이어지는 연주라 더욱 감동적이었던.
이 영화를 통해 애드리언 브로디는 완전히 다른 대우를 받게 됩니다 으하하하하
물론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그냥 좋아하기에는 참 거리끼게 되는) 사생활 문제는 여전히 논란이 되는 부분.
아... 또라이여야 명장이 될 수 있는 건지;;
(감사합니다!! 이글루스 영화 밸리 인기글 1위, 밸리 전체 인기글 3위에 올랐어요ㅠㅠ 인증샷 추가합니다~)


음악은 폐허 속에서도 살아남는다
유태계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거장 로만 폴란스키가 만들어낸
<피아니스트>. 제목만큼이나 영화를 꽉 메우는 피아노 선율은 관객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언제 봐도 소
름끼치는 유태인 학살과 전율이 흐르는 음악을 한 자리에 담아내면서 영웅이 아니라 약하디 약한 인간
을 그려 더욱 감동을 자아냈다.
글_ 최진주 기자
그들을 누구를 죽이고 싶어했나
<쉰들러 리스트>와 <인생은 아름다워>에 이어 또다른 방식으로 유태인 대학살을 지켜보는 <피아니스
트>는 새삼 나치의 잔혹성을 인식하게 한다. 한 가족을 도망치게 한 후 뒤에서 기관총을 난사하고, 병
든 노인을 건물 위에서 집어던지는 행위를 즐기는 군인들은 방금 자신이 죽인 사람들, 어쩌면 약한 숨
이 남았을지도 모르는 육체를 차로 짓뭉개며 지나간다. 2차 세계대전이 역사 속에서 가장 무섭게 기억
되는 이유는 몇몇 민족에게 있어서 쌍방이 치열하게 싸움을 벌이는 '전쟁'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당해야
만 하는 '학살'이었기 때문이다. 괜히 질문을 해도 이마 한가운데 총구멍이 생기고-게다가 대답도 안 해
준다-살기 위해 동족을 배신하고 나치 앞잡이가 되었는데도 늙었다는 이유로 토사구팽당한다.
독일인 중에도 유태인 학대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이 많았지만, 이상하게도 군복을 입은 독일인은 죄다
살기로 번들거리는 눈빛을 가졌으며 광적으로 그것을 즐겼다. 대중을 한꺼번에 선동하는 집단의식은 개
인의 생각과 상관없이 개인을 지배했다. 당시 패전했던 독일의 열등의식과 유태인이 기업을 장악하여
미움받았던 경제적 상황 등 복합적인 요인들이 맞물려 '유태' 민족이 선택받고-그들의 선민사상 즉 선택
받은 민족이라는 사상은 얼마나 아이러니한가-정치적으로 고통을 당했던 것이다.

그러나 잊지 말자. 우리도 북한 사람들이 뿔 나고 빨간 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 독일 안에서 전쟁 상
황을 몸으로 느끼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 특히 교육을 받는 순진한 세대는 우리처럼 그렇게 배웠다. 그
리고 믿었다. 한 민족 전체를 학살하는 과정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사람들의 절망 어린 눈빛 속에서
그들은 우월감으로 가슴이 부풀어오르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들이 정말 죽이고 싶었던 것은 자기 마
음 속에 있는 패전국이라는 열등감이었다. 단지 유태인은 운이 심하게 나빴던 것 뿐이다.

예술가도 사람이다
우리는 예술가가 좀 더 다른 생각을 하고, 특별하게 행동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예술가라는 이유로 그를
가스실을 향한 기차에서 빼내고 은신처를 구해주는 등 특별대우를 해준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에서 슈
프만은 살아남기 위해 도망치고 숨는다. 카라멜 하나를 6등분해서 나누어 먹었던 가족과 함께 죽기 위
해 다시 열차에 몸을 싣지도 않고 가족을 수용소에서 빼내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 그는 분명
히 죽었을 가족을 완전히 잊고 오로지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느라 여념이 없다. 죽음의 위기 앞에서는
어떤 사람이나 같다.
전쟁 종결 후 만약 그가 자신을 구해준 독일군 장교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것으로 끝났다면 그것은 우
리가 바라는 이상에 불과했을 것이다. 슈필만은 그의 이름을 몰랐고, 장교는 수용소에서 죽었다. 감동적
인 보은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것이 현실이다.

음악이, 피아노가 그가 살기 위한 이유였다고 하자. 살아서 다시 피아노를 치는 것이 그의 소원이었고,
그것은 이루어졌다. 힘없는 음악가에게는 음악이 총인가, 칼인가. 그렇지 않다. 그에게 음악은 저항의 도
구가 아니라, 죽기 전에 미리 연주하는 장송곡이었다. 그래도 예술가는 뭔가 다른 게 있다. 행복한 미소
로 피아노 건반을 쓰다듬는 슈필만. 벽 너머로 들리는 피아노곡을 따라 허밍으로 흥얼거리며 건반 위
허공에서 뛰노는 아름다운 슈필만. 그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가족도 아니고 사랑도 아니고, 자기 자신이
다. 그리고 그가 살려면 음악이 필요하다. 만약 독일 장교가 연주를 다 듣고 그의 손가락을 부러뜨렸다
면 그의 자아는 죽어버렸을까?
한가지만 생각하자.
슈필만의 인간적인 단점때문에 그의 음악이 퇴색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가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으
로 우리는 행복하다. 차별대우라고는 하지만, 슬프도록 아름다운 현실이다.
2002 <피아니스트> 감독 로만 폴란스키, 주연 애드리안 브로디


2013년의 사족-----------------------------------------
많은 관객들이 이 장면에서 엉엉 한마음으로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마지막 사진)
롱테이크로 이어지는 연주라 더욱 감동적이었던.
이 영화를 통해 애드리언 브로디는 완전히 다른 대우를 받게 됩니다 으하하하하
물론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그냥 좋아하기에는 참 거리끼게 되는) 사생활 문제는 여전히 논란이 되는 부분.
아... 또라이여야 명장이 될 수 있는 건지;;
(감사합니다!! 이글루스 영화 밸리 인기글 1위, 밸리 전체 인기글 3위에 올랐어요ㅠㅠ 인증샷 추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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