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단식 칼럼-라이프 이즈 오렌지
스마트 라이프에 쉼표를 찍어라
힐링, 다운시프트, 슬로시티... 역사상 가장 스마트한 일상을 영위하고 있는 우리가 요즘 원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스마트하지 않은 삶이다. 그렇다고 스마트 라이프에 반기를 들지는 말자. 무인도에 들어앉거나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잠시 pause(일시정지)를 눌러주자는 말이다.
글_ 최진주(디지털 매거진 <Feeling Punch> 편집장)
새로운 디지털 기기가 등장할 때마다 많은 이들-과학자, 의사, 방송, 그리고 부모님-이 그 기기의 폐해를 걱정해왔고, 그 우려는 현실이 되곤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기들은 없으면 안 되는 일상적인 존재로 머리맡에 놓여있게 되었다.
ADHD와 비만율을 높이는 TV부터 시작하여, 누군가를 난청으로 만든 학창시절의 워크맨과 MP3 플레이어, 손목터널 증후군과 거북목을 일으키는 컴퓨터 모니터... 이중에서 '갑'을 선정한다면 단연 휴대전화가 아닐까 싶다. 피처폰이던 시절부터 남자의 정자 수를 줄이고, 여자의 임신 가능성을 줄이며, 뇌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며 의사들의 맹공격을 받아왔던 그것은 영민하게도 '스마트폰'으로 변모하여 우리 모두를 굴복시켰기 때문이다.
어플을 내 맘대로 꽂아 넣을 수 있고, 인터넷 세상에 마음껏 접속할 수 있는 스마트폰의 원리 덕분에, 스마트폰을 향한 열광은 현재진행형이다. 회사 화장실에서도 쇼핑이 가능하며 책 볼 시간이 없어도 세상 돌아가는 일에 빠삭해진다. 만난 지 오래인 지인들의 근황도 스마트폰 하나면 지금 당장 알 수 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피로감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른바 ‘디지털 피로’다. 어릴 적부터 디지털 기기를 만지며 지냈던 우리는 이전 세대에 비해 훨씬 강력한 디지털 피로에 노출되어있다.
사실 피로의 원인은 간단하다. 육체가 쉬지 못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건 결코 휴식이 아니다. 우리는 순간의 심심함을 참지 못하는 역사상 가장 인내력이 부족한 인간이 되었다. 부팅이 필요 없는 태블릿PC와 스마트폰 탓에 수면 시간도 줄어들었다. 게다가 대부분의 디지털 기기는 발광 매체 즉, 빛을 내뿜는 기기다. 발광매체를 집중해서 오랜 기간 쳐다보면 눈과 뇌가 극심한 피로감을 얻게 된다. (참고로, 피부 역시 광노화의 단계를 밟는다.) 더불어, 현재 자신의 자세를 점검해보라. 거의 <반지의 제왕>의 골룸 수준으로 척추를 쭈그리고, 목을 움츠리고 있을 것이다. 이쯤 되면 몸이 안 피곤한 게 이상할 상황이다.
정신적으로는 어떨까? 우리는 스스로를 2~3가지 작업을 동시에 하는 멀티태스킹형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만 애초에 ‘멀티태스킹’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뇌는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행위를 구현하지 못한다. 계속 주의를 전환하고 있는 것뿐이다. 그러니 작업 퀄리티도가 낮아지고 실수도 늘어나는 것이다. 요즘 학계에서 큰 이슈는 스마트폰 중독이다. 뇌에 영향을 끼쳐 현실에 무감각해지고, 주의력, 반응속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팝콘브레인’ 증후군은 비단 어린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많은 정보가 널려 있는 디지털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전 세대보다 똑똑하다고 여길지 모르겠다. 그러나 선택지가 과도하게 많아진 통에 우리 중 대부분은 결정장애가 있다. 그에 따라 자기 선택에 대한 만족지수 역시 훨씬 낮아졌다. 또 정보를 놓치면 뒤처지는 기분을 느끼고 불안해하는 정보강박증 역시 심각하고, 불필요한 정보를 받아들이느라 뇌에 과부하가 걸린다. 여기에 SNS를 하면서 느끼는 인간관계의 피로감까지! 스마트라이프는 총체적인 행복지수에 악영향을 미친다.
디지털 피로는 지속적이고 벗어나기 쉽지 않기 때문에 더욱 심각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스마트라이프에 반기를 든 사람들도 생겼다. 이른바 ‘디지털 단식’이다. 그러나 이는 끼니를 굶는 단식보다 훨씬 어렵다. <로그아웃에 도전한 우리의 겨울>의 저자 수잔 모샤트처럼 집안의 모든 디지털 기기를 6개월간 창고에 숨겨두는 무시무시한 실험을 과연 한국에서 할 수 있을까? 특히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디지털 기기를 끊을 수 없다면, 적당히 하면 된다. 우리의 뇌를 팝콘이 아니라 단밤으로 만들어보는 거다. 다음은 직업상 디지털 세상에 남보다 오래, 깊이 빠져 있는 필자가 실제로 활용하고 있는 디지털 ‘절식’ 노하우다.
-스마트폰이든, 태블릿이든 결국 몸집 작은 컴퓨터다. 컴퓨터도 24시간 365일 켜놓으면 수명이 줄어든다. 가끔 스마트폰을 꺼두어 쉬게 해줄 필요도 있다. 잠자리에 들기 직전 ‘종료’ 버튼을 눌러라. 스마트폰이 쉬는 동안, 당신의 뇌도 쉬게 될 것이다. 아침의 알람은 진짜 시계로 맞춰둘 것.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등의 알림음을 ‘무음’으로 설정해둔다. 조금 늦게 봐도 큰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정말 급한 용무라면 전화로 걸겠지!)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의 계정을 삭제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지만, 여전히 SNS 중독자들이 범람한다. 완전히 끊는 것이 어렵다면 스마트폰에서 SNS 어플을 삭제하고, 컴퓨터로만 한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억제가 된다.
-다이어리든, 드로잉 노트든, 블로그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공간을 마련하고 시간을 투자할 것. 내 머리로 정리하는 동안 스마트라이프는 분명 미니멀화한다.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