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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사랑 / 서양음악사 / 스캔들] 구스타프 말러 & 알마 말러 러브스토리-<문화공간>(세종문화회관 월간지) 2013년 2월호 *최진주 기자의 레알 기사* 아티스트(예술가의사랑)

불멸의 연인

알마 말러와 구스타프 말러

‘비엔나의 아름다운 꽃’으로 불리며 수많은 예술가들과 염문을 뿌렸던 여인 알마 말러. 그녀의 마지막 이름은 알마 마리아 쉰들러 말러-그로피우스-베르펠이다. 다사다난한 연애사가 느껴지지 않는가? 그녀 섭렵한 남자 리스트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알마가 사랑한 남자들은 모두 당대 최고의 명성과 재능을 자랑하는 사람들이었고, 관계의 주도권은 그녀에게 있었다. 후대 사람들이 그녀를 팜 파탈이라고도 부르는 것도 과언은 아니다. 예술가들은 그녀에게 속절없이 빠져들었고, 환상적인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

글_ 최진주


41세 노총각, 사랑을 얻다

1965년, 알마 말러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시인 톰 레러가 ‘알마’라는 제목의 시를 썼다. 풍자시였기에 그녀를 칭찬하는 내용은 아니지만, 첫 소절을 읽으면 그녀가 예술가들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알 수 있다.

The loveliest girl in Vienna

Was Alma, the smartest as well.

Once you picked her up on your antenna,

You'd never be free of her spell.


비엔나에서 가장 사랑스러웠던 여자, 알마.

물론 가장 똑똑하기도 했던.

당신의 안테나가 그녀를 포착하는 순간,

당신은 결코 그녀에게서 벗어날 수 없지.


1879년, 알마 말러는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화가 에밀 자콥 쉰들러의 딸로 태어났다. 소프라노 가수였던 어머니는 남편이 일찍 죽자 남편의 제자 카를 몰과 결혼했다. 새아버지는 전통미술에 대항하는 빈 분리파였기에, 유명 인사들이 집에 자주 찾아왔다.

알마는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쳤고 아홉 살 무렵 작곡을 하기 시작하면서 굉장한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 또한 열네 살쯤 되자 니체의 <짜라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외우고 다닐 정도로 총명했다. 백옥처럼 하얀 얼굴과 탐스러운 머릿결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지성까지 겸비한 여인 알마의 존재는 빈에 사는 사람이라면 모를 리 없을 정도로 장안에 널리 퍼졌다.

새아버지 덕분에 사춘기 시절부터 예술가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던 알마의 첫사랑은 그녀가 17세 때 그녀의 집을 드나들던 화가 클림트였다. 클림트는 카를 몰의 친구였고, 격분한 새아버지 탓에 두 사람의 관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보다 못한 어머니는 조금 못생긴 쳄린스키에게 작곡수업을 받게 했지만, 인물보다는 재능에 빠지는 편이었던 알마에겐 또다른 스캔들에 불과했다. 이처럼 알마의 주위에는 나이를 불문하고 그녀의 사랑을 얻고자 하는 남자들이 많았다. 일에 열중하느라 사랑을 잊고 살았던 41세의 싱글남 구스타프 말러 역시 그 중 한 명이었다.

빈 궁정 오페라단의 단장을 맡았던 구스타프 말러가 알마를 만난 것은 바로 1901년 11월, 여성 작가 베르타 주커칸들이 주최한 모임에서였다. 문학 살롱에서 그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한 채 알마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알마에게 첫눈에 반한 말러는 그녀의 주위를 맴돌다가 알마에게 프러포즈를 한다. 물론 알마의 가족들은 이 청혼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부보다 19년 연상이고, 심지어 장인보다 한 살 많은 41세 노총각에게 딸을 보내고 싶지 않은 것은 인지상정. 게다가 말러가 오페라단장이다보니 무대에 서고 싶은 가수 지망생들이 그를 유혹하는 모습이 매우 일상적이었고 불치병에 걸렸다는 소문도 있었기에 알마의 집안에서 볼 때 말러는 무척 탐탁지 않은 신랑감이었다.



그런데 청혼한 지 3주 후, 말러는 알마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낸다. 여기엔 말러의 결혼관이 가득 쓰여 있었다. 내용인즉슨, 자신의 아내가 된다면 오직 집안일에 전념하며 남편의 활동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야 하고 아내는 남편과 같은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알마에게 설설 기어도 모자란 상황에서 가부장제적인 말러의 태도는 모두를 놀라게 했지만, 알마는 그와 결혼하기로 마음먹는다. 알마가 어째서 말러에게 사랑을 느낄 수 있었는지는 세간에 알려진 다음의 대화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알마: 난 재능 있는 남자가 좋아요. 위대한 업적을 이룰수록 더 끌리게 돼요.

말러: 그래? 그럼 나보다 재능있는 사람을 만나면?

알마: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겠죠.

말러: 그럼 마음을 푹 놔도 되겠군. 나보다 뛰어난 사람은 본 적 없으니.

알마는 이처럼 자신감을 보이고, 그 자신감을 증명할 수 있는 충분한 재능을 가졌으며, 당시 빈 최고의 문화계 인사라는 타이틀을 가진 말러가 좋았다. 말러는 당시 완성한 제5번 4악장 ‘아다지에토’를 알마에게 헌정했다. 크게 감동받은 알마는 이듬해 3월 말러와 결혼한다.



최고의 교향곡 작곡가, 사랑을 잃다

그렇게 비엔나 최고의 미녀를 자기 옆에 앉히는 데 성공했지만, 말러는 음악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는 결혼 전 알마에게 보냈던 편지 그대로, 조용한 현모양처를 원했다. 말러는 알마의 음악 활동을 극도로 싫어했고, 자유분방한 알마는 가정부나 다름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는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말러는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황궁오페라단에서 연습과 연주를 하며 보냈고, 휴가 때는 호숫가 오두막에서 작곡에 매진했다. 가족을 돌보지 않는 남편과 단조로운 결혼생활을 견디다 못해 ‘아이, 남편, 오페라극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상관없어.’라는 식으로 일기를 쓸 정도였다.


그러던 중 1907년, 말러 부부에게 최악의 해가 다가왔다. 딸 안나 마리가 성홍열에 걸려 죽자, 알마는 충격에 빠졌고 우울증에 걸려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한편 말러는 반유태주의자들의 차별에 반발하여 황궁오페라단장을 사임했다. 말러는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 그동안 반대했던 작곡 활동을 다시 할 수 있도록 해주고, 교향곡 제8번을 아내에게 헌정한다.

그러나 심장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알마의 사랑이 자신에게서 멀어지고 있음을 느끼면서 말러의 정신은 더욱 피폐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1909년 심포니 9번을 작곡하면서 악보에 ‘Oh Beauty, Oh Love, Oh Farewell’이라고 썼다. 아름다움과 사랑에 작별을 고한다는 문장이 쓰여진 심보니 9번의 4악장. 말러의 친구들은 이를 ‘죽음을 기다리는 자의 마지막 고백’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딸의 죽음으로 정신적 상처를 입은 알마는 이 때부터 젊은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와 사랑을 나누기 시작한다.

1910년, 여름 말러가 교향곡 제8번을 초연하기 위해 연습에 매진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어느 날, 그로피우스가 알마에게 ‘말러를 떠나 자신과 결혼해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면서 주소를 말러 앞으로 잘못 쓰고 만다. 그 바람에 두 사람의 은밀한 관계는 발각되지만, 그로피우스는 말러 부부의 집까지 찾아와 담판을 지으려 한다. 둘 중 한 사람을 택하라는 요구에 알마는 말러를 택한다. 하지만 그녀의 선택은 말러를 향한 사랑이 아니라 책임감과 걱정 때문이었다. 나중에 그녀는 그로피우스에게
‘내가 말러를 버렸다면 그는 죽었을 것이다’고 말했다고 한다.




위기를 느낀 말러는 자신이 작곡을 못하게 한 것에 불만을 품고 다른 남자를 만난다고 생각했고,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그는 아내의 마음이 돌아오길 바라며 알마가 작곡했던 여러 편의 가곡들을 공식적으로 출판해주었고, 그리하여 그녀의 작품 중 다섯 편이 그해에 발표되었다. 그러나 예술을 잃고 딿을 잃어 공허한 마음은 쉽사리 채워지지 않았다. 그녀는 말러의 곁에 남았지만 발터 그로피우스와 계속 만났고 사랑의 편지를 주고받았다.



천재성을 가진 건축가, 그것도 자신보다 23년이나 젊은 그리피우스에게 아내를 당장이라도 빼앗길 것만 같은 두려움. 말러는 아내의 외도를 알게 된 1910년 여름 이후 정신분석가 프로이드를 만나 고민을 털어놓음과 동시에 교향곡 제10번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결혼생활에서는 알마를 따뜻하게 보듬어주지 못했지만, 그가 아내를 사랑했던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비탄에 잠겨 쓴 교향곡 제10번은 미완성으로 남았으며 말러 자신에게는 유언장이 되었다. 1911년 5월 18일, 말러는 뉴욕 공연을 마치고 돌아와 빈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교향곡 제10번 악보의 마지막 페이지 여백에는 그의 유언이 남겨져 있었다고 한다.

“오직 너만이 이 뜻을 이해할 테지. 안녕, 안녕, 나의 리라…당신을 위해 살고 당신을 위해 죽는다, 알마.”


말러의 미망인, 말러를 기리다

구스타프 말러가 죽은 후, 많은 이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고 그가 두고 간 수많은 음악적 성과는 문화와 음악사적으로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받았다. 말러의 전기(傳記)를 준비하는 작가들도 많았다. 1924년, 말러와 알마가 주고받은 편지를 모아 정리한 <구스타브 말러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들>이 출간되었다. 출판을 주도한 사람은 바로 알마였다. 말러는 결혼 생활 중 알마의 곁에 오래 있지는 못했지만 집을 떠나 지휘 투어를 다닐 때는 하루에 2~3번씩 알마에게 편지를 썼다. 그런데 그에게는 편지에 날짜를 적지 않는 버릇이 있었고, 나중에 알마가 일기를 보거나 기억을 끼워 맞춰 날짜를 적어 넣었다. 그러다보니 날짜의 오류가 있었다. 또한 말러의 편지 내용 중에서 자신에게 문제가 될만한 부분은 긍정적으로 수정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알마가 살던 시기는 세계대전으로 혼란스럽기 그지 없던 때였지만 그녀는 어려운 와중에도 말러의 악보와 비망록을 챙겼다. 그리하여 1940년 <구스타브 말러: 회상과 서한>이라는 책을 냈다. 그러나 이 회고록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오류과 인위적인 수정이 발견되어 말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었다. 출판 과정에서의 잘못으로 그녀의 ‘팜 파탈’ 이미지가 더욱 굳건해진 것도 사실이다.

그녀는 프란츠 베르펠과 미국으로 건너와 유럽 출신 이민자들의 사회에서 주도적인 인물로 활동했다. LA에서도 그녀는 비엔나에서 살던 때와 마찬가지로 문화계의 꽃으로 존재했다. 뉴욕에서는 다양한 예술 활동에 활발하게 참여했다. 특히 말러를 숭배하지만 동시대 사람이 아니라 말러를 만나지 못했던 지휘자 레오나드 번슈타인의 리허설을 돕고 많은 조언을 했다.


팜 파탈, 재능을 사랑하다

말러가 죽은 후, 알마와 둘째 딸 안나는 말러의 재산을 물려받고 연금도 받을 수 있었다.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지내며 알마는 다방면의 문화계 인사들과 돈독하게 지냈다. 알마의 집은 늘 비엔나의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어린 시절의 그녀가 똑똑하고 어여쁜 모습으로 인기를 얻었다면, 이제는 성숙한 여인의 매력까지 더해졌으니, 그야말로 모든 모임의 주인공이자 꽃이었다. 그녀가 프란츠 베르펠과 결혼할 때에는 알마가 50세였고 베르펠은 39세로 알마가 무려 11년 연상이었다. 또 그녀가 55세에 만난 추기경 호렌 슈타이너는 추기경 지위를 벗어던지고 알마를 택했다. 예술적인 재능과 타고난 미모, 여기에 청력이 약하다는 신체적 문제조차 남자들과 가까이서 대화할 수 있는 장점으로 승화시켰다는 뒷이야기도 있다. 알마가 그저 젊고 아름다워서 예술가들이 그녀에게 빠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를 사랑했던 예술가 모두 그녀로 인해 영감을 얻고 능력을 발휘해 역사에 길이 남을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표현주의 화가 오스카 코코슈카의 경우 그저 무명의 청년 화가에 불과했지만, 알마와의 사랑으로 유명해진 케이스다. 그는 거칠고 불안정한 성격이었기에 그녀는 점차 그의 사랑이 부담스러워졌다. 코코슈카는 그녀를 잊지 못해 알마를 닮은 실물 사이즈의 인형을 만들어 병원에서 함께 지냈고, 1913년 자신과 알마의 애정행위를 그린 <바람의 신부>를 완성했다.

수많은 남자들 중, 그녀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은 아쉽게도 구스타프 말러가 아닌 발터 그로피우스로 보인다. 말러가 살아있을 때 잠시 밀회했던 두 사람의 관계는 1915년 전쟁 중 육군 중위였던 그를 알마가 간호하게 되면서 다시 이어진다. 두 사람은 비밀 결혼식을 올렸고, 알마는 딸 마농을 낳았다. 마농은 꽃다운 18세에 세상을 떠났다. 작곡가 알반 베르크가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며 ‘천사를 애도하며’라는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고할 정도로 굉장한 매력을 지녀 모든 이에게 사랑받았던 마농. 알마에게 마농은 그녀 자신과도 같았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1964년 알마가 세상을 떠날 때 마농과 함께 있길 바랐고, 원하는 대로 합장되었다. 지난날의 추억이 가득한 비엔나로 돌아온 알마. 공교롭게도 마농은 첫 남편 말러가 묻혀 있는 묘지에 묻혀 있었다. 같은 땅 아래 잠들어 있는 말러는 조금쯤 행복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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