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인 유혹, 당 중독
일어나자마자 습관적으로 마시는 커피. 밥맛없고 시간 없어서 끼니로 때우는 빵. 입이 심심해져 TV볼 때 먹는 과자. 매운 떡볶이 먹고 칼칼해진 입 달래려 베어 무는 아이스크림. 그저 평범한 일상의 한 자락에서 당 중독이 시작된다. 순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당신의 건강신호등은 현재 빨간불이다.
글_ 최진주(건강칼럼니스트)
당 중독,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당이 떨어지니 손이 떨리네.” “당 떨어지면 머리가 안 돌아가.” 살면서 한번쯤 들어보거나 직접 말해봤을 것이다. 오후 3,4시경 달달한 간식을 먹으며 이를 합리화할 때 쓰는 직장인의 유용한 변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이는 과학적으로 옳은 이야기다. 몸속 에너지를 많이 사용해 바닥나면 혈당이 순간적으로 떨어지고, 인체는 영양소가 필요하다고 아우성을 친다. 그러나 정작 필요한 영양소를 섭취하는 것보다는 단 음식을 먹어 당을 보충하는 방법이 훨씬 더 빠른 결과를 얻는다. 달콤한 음식에 의해 혈당은 빠르게 치솟고, 정신이 번쩍 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또 몸속 수분이 부족할 때는 무미건조한 물을 마시는 것보다 톡 쏘는 탄산음료를 마실 때 ‘시원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순수한 물을 공급하지 않으면 그 갈증은 전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가뜩이나 모자란 수분을 몸 밖으로 배출하는 이뇨작용을 촉진할 뿐.
이런 일상의 반복을 통해 우리는 당에 중독되고 만다. 사실 그 원리는 매우 간단하다. 단맛은 우리 몸에 들어와 도파민의 분비를 돕는다. 도파민은 일시적으로 기분을 좋아지게 만드는 쾌감 호르몬이다. 도파민 역시 ‘행복 호르몬’의 일종이지만 세로토닌과는 달리 못된 성질을 갖고 있다. ‘내성’이 생겨 중독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마약이나 약물 중독자들 역시 이와 같은 원리로 증상이 심해진다. 처음에는 초콜릿을 한 조각만 먹어도 반응했던 몸은 점점 더 많은 당을 섭취해야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 나중에는 당이 조금만 부족해도 정말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짜증이 나고 피로를 느낀다. 감정의 변화를 참지 못해 신경질을 내다가 사회생활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단 것이 계속 당기고, 계속 먹고 있으며, 감정 조절이 되지 않는 수준에 이르렀다면 당 중독을 의심할 필요가 있다.
당 중독에 빠지면, 아무래도 높은 칼로리 때문에 살이 쪄 비만에 이를 위험이 커진다. 뿐만 아니라 당뇨에 걸릴 가능성도 상당하다. 또 심근경색이나 대사증후군 등 성인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가족력이 있을 경우 더욱 위험하겠지만, 가족력이 없다고 해서 안 걸리는 것도 아니니 여러 모로 조심해야겠다.
당, 어디에 들어있나
보통 ‘단 것’이란 말에서 사람들은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떠올리겠지만, 복병은 곳곳에 산재해 있다. 밀가루 음식, 빵류, 탄산음료, 그리고 커피 등 우리가 평소 쉽게 먹는 것들이 당을 가득 함유하고 있다. 어쩌면 아이들보다 오히려 성인이 더 위험할 수 있다. 미성년자들은 부모에 의해 식생활을 어느 정도 통제받기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하루 평균 당 섭취량이 최근 3년 사이에 23% 증가했다. 특히 30~49세 직장인과 주부들의 섭취량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여기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품목은 바로 커피였다. 믹스커피뿐만 아니라 시럽 등이 들어가는 카페의 커피 역시 당을 많이 함유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커피 시장의 확대와 함께 당 섭취량이 증가한 셈이다.
커피 33%, 일반음료 21%, 탄산음료 14%, 과자류와 빵류 16%, 유제품(가공우유, 요거트 등) 8%... 이외에도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당도 존재한다. 편의점이나 마트의 냉장고에 늘어서 있는 수많은 음료들 중 상당수에 ‘무가당’이란 문구가 쓰여 있다. 소비자는 이를 ‘당 없음’으로 인지하고 있지만, 여기에 속아서는 안 된다. ‘무가당’이란, 당을 첨가하지 않았다는 뜻일 뿐이다. 만약 재료 자체에 당이 들어있는 경우라면 아무리 무가당이란 말이 붙어있어도 당 지수가 높은 식품인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과일 주스다. 무가당 과일주스라도 과일 자체에는 과당이 많이 들어있다.
‘저칼로리’ 같은 말이 붙어있는 다이어트 음료 역시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사실 다이어트 음료라고 해서 맛이 밍밍하다면 소비자도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기업에서는 단맛을 내는 대체감미료를 사용해서 설탕과 유사한 단맛을 첨가한다. 칼로리는 낮아지겠지만 섭취하는 당의 양으로 계산한다면 그 수치가 어마어마한 것이다.
당 중독 예방은 어떻게?
당 중독을 피하고 싶다면 우선 밥부터 잘 챙겨먹자. 무척 쉽고 간단하지만, 의외로 지키기 어려운 방법이다. 세끼를 불규칙적으로 먹는다거나, 입맛이 없다고 건너뛴다거나, 빵으로 대충 때우면 혈당이 롤러코스터처럼 널뛰기를 한다.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자. 먹고 싶지 않다면 소량이라도 먹어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혈당이 평온하게 유지되어 인체가 당을 급히 요구하는 일도 발생하지 않는다.
둘째, 진짜 ‘밥’을 먹자. 물론 쌀밥에도 복합당이 들어있다. 복합당은 인체가 평소 생활하는 데 꼭 필요한 에너지로 바로 변한다. 한 끼에 쌀밥 두 그릇을 먹는 등 과잉섭취만 하지 않으면 문제없다.
셋째, ‘통’으로 섭취하자. 어떤 음식이든 가루를 낸 것보다는 통으로 먹는 메뉴를 선택할 것! 이런 음식은 당 구조가 복잡해 바로 흡수되지 않기 때문에 혈당의 과도한 상승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쌀밥은 빵이나 국수보다 훨씬 좋은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한국의 식문화에서 쌀은 대개 통쌀로 만든 밥으로 섭취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더욱 좋다. 쌀떡, 쌀과자, 쌀국수보다 고슬고슬한 쌀밥을 고르고 과일주스 대신 과일 그 자체를 즐긴다면 당 중독 걱정은 안 해도 될 듯. 또한 만약 밀가루 음식을 먹게 되었다면 채소 섭취량을 늘리자. 섬유질이 당의 흡수가 느려질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순간적으로 기분을 좋게 해주는 도파민의 유혹을 단칼에 자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건강하고 규칙적인 식생활과 약간의 인내심만 있다면 당 중독은 충분히 피해갈 수 있다.
box 당을 섭취했다면 곧바로 양치질을!
치아에 달라붙는 당류를 피해라. 당은 입속 세균이 굉장히 좋아하는 성분이다. 아이스크림을 물고 잠드는 아이만큼이나 커피를 즐기는 성인 역시 충치의 위험지대에 놓여있다. 하루 마시는 커피를 1잔 이하로 줄이되 천천히 홀짝거리지 말고 빨리 마셔라. 커피 외에도 탄산음료 등 당이 들어간 음료를 마셨다면 물로 입안을 바로 헹구는 것이 좋다. 치아에 잘 달라붙는 간식을 먹은 경우 양치질을 빨리 하는 것이 충치를 예방하는 길이다. 세상에 치과 치료비만큼 제일 억울하고 아깝고 석연치 않은 것이 있던가? 당 중독을 조심하면 치과에서 고생할 일도 줄어드니 일석이조다.
덧글